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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에 쏙 드는 만년필과 잉크를 고르고, 좋아하는 시 한 구절을 정성껏 써 내려갈 생각에 부풀었던 것도 잠시, 노트 위에 남겨진 내 글씨를 보고 실망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비싼 만년필을 쓰면 저절로 명필이 될 것 같았는데, 오히려 또박또박 쓰기 더 어렵고 삐뚤빼뚤 춤을 추는 글씨에 좌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예쁜 손글씨는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올바른 방법과 꾸준한 연습으로 만들어지는 '기술'에 가깝습니다. 특히 만년필은 그 기술을 익히는 데 최고의 파트너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악필이라며 좌절했던 분들도 자신감을 찾고, 나만의 '감성 손글씨'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만년필 글씨의 기초부터 실전 연습법까지 모든 것을 알려드리겠습니다.

     

     

    1. 시작이 반이다: 예쁜 글씨를 위한 만년필 사용법의 모든 것

    많은 사람들이 글씨 교정을 시작할 때 무작정 글씨체부터 따라 쓰려고 합니다. 하지만 건물에 기초 공사가 중요하듯, 손글씨에도 기초가 있습니다. 바로 만년필이라는 도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십 년간 익숙해진 볼펜 사용법의 기억을 잠시 내려놓고, 만년필에 맞는 새로운 습관을 들이는 것만으로도 글씨의 안정감이 극적으로 달라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가장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만년필 잡는 법(파지법)입니다. 볼펜처럼 펜을 꽉 쥐고 수직으로 세워 쓰는 습관은 만년필에 최악입니다. 만년필은 엄지와 검지로 가볍게 펜을 잡고, 중지는 아래에서 부드럽게 받쳐주는 '세 손가락 파지법(Tripod Grip)'이 기본입니다. 이때 손에 힘이 과도하게 들어가면 유연한 선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금방 피로해집니다. 펜이 손에서 빠지지 않을 정도로만 가볍게 쥐는 것이 핵심입니다. 펜의 몸통은 검지와 엄지 사이의 오목한 부분에 자연스럽게 기대어 놓습니다. 그리고 종이와 펜의 각도는 약 45~60도를 유지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펜을 너무 세우면 펜촉 끝이 종이를 긁게 되고, 너무 눕히면 잉크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편안하면서도 잉크 흐름이 좋은 각도를 찾아보세요. 이 올바른 파지법은 단지 글씨를 예쁘게 쓰기 위함이 아니라, 장시간 필기에도 손목에 무리를 주지 않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두 번째 핵심은 바로 '힘 빼기의 마법'을 깨닫는 것입니다. 만년필은 잉크가 모세관 현상에 의해 펜촉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원리로 작동합니다. 즉, 볼펜처럼 꾹 눌러 쓸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과도한 필압은 펜촉을 망가뜨리는 주범이며, 잉크 흐름을 방해해 글씨가 끊기거나 번지는 원인이 됩니다. '펜의 무게만으로 쓴다'는 느낌을 기억하세요. 손은 그저 펜이 나아갈 방향을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이 느낌을 익히기 위한 좋은 연습 방법이 있습니다. 종이 위에 펜촉을 올려두고, 아주 살짝만 손에 힘을 주어 잉크가 겨우 나올 정도로 선을 그어보세요. 그 상태에서 조금씩 힘을 빼면서 펜 자체의 무게만으로 선이 그어지는 감각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이 '무필압'의 상태에 익숙해지면, 글씨에 불필요한 긴장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것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이는 악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일정하지 않은 선의 강약'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됩니다.

     

     

    2. 지루한 연습은 이제 그만! 재미있게 손글씨 교정하는 실전 훈련법

    올바른 자세와 힘 빼기 감각을 익혔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글씨의 뼈대를 만드는 훈련을 시작할 차례입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지겹게 했던 '깜지'를 떠올릴 필요는 없습니다. 목적을 이해하고 재미를 붙이면 손글씨 연습은 충분히 즐거운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핵심은 글자를 '그림'처럼 인식하고, 그 구성 요소를 하나씩 분해하여 연습하는 것입니다.

    • 1단계: 선과 도형으로 손 근육 깨우기 (준비 운동)
      본격적인 글자 연습에 앞서, 만년필의 흐름에 손을 적응시키는 준비 운동이 필요합니다. 자 없이 직선(가로, 세로, 대각선)을 긋는 연습부터 시작하세요. 일정한 간격과 길이로 선을 긋는 데 집중합니다. 그 다음은 동그라미(ㅇ), 스프링(ㄹ의 윗부분), 물결(~) 모양 등 곡선을 연습합니다. 이 과정은 단순히 손을 푸는 것을 넘어, 내가 원하는 대로 펜을 제어하는 힘을 길러줍니다. 특히 일정한 기울기의 대각선과 일정한 크기의 동그라미를 반복해서 연습하면, 글씨 전체의 통일감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 2단계: 자음과 모음 분해하고 재조립하기 (뼈대 세우기)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라는 매우 규칙적인 조형 요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쁜 글씨는 이 기본 요소들이 얼마나 일관된 형태와 크기, 비율을 가지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예를 들어, '감성'이라는 단어를 쓴다고 가정해봅시다. 'ㄱ'의 꺾이는 각도, 'ㅅ'의 대칭, 'ㅁ'의 사각형 모양이 매번 달라진다면 글씨가 지저분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자음과 모음을 따로 떼어내어 집중적으로 연습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ㄱ, ㄴ, ㄷ...' 순서대로, 각 자음의 형태적 특징을 분석하고 자신만의 기준을 만드세요. 'ㅇ'은 완벽한 원에 가깝게, 'ㅁ'과 'ㅂ'은 수직과 수평을 맞춰 반듯한 사각형으로 쓰는 연습을 합니다. 모음 역시 'ㅏ'의 세로획은 곧게, 가로획은 일정한 위치에 짧게 긋는 연습을 반복합니다. 이렇게 개별 부품을 완벽하게 다듬어 놓으면, 나중에 어떤 글자를 조립하더라도 훨씬 안정적이고 정돈된 형태가 나옵니다.
    • 3단계: 간격과 정렬로 완성도 높이기 (디테일 마감)
      아무리 개별 글자를 예쁘게 써도, 글자와 단어 사이의 간격이 들쑥날쑥하고 줄이 맞지 않으면 전체적으로 산만해 보입니다. 예쁜 손글씨의 숨겨진 비결은 바로 '질서'입니다. 자간(글자 사이 간격)과 띄어쓰기(단어 사이 간격)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모눈(그리드) 노트를 활용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입니다. 모눈 한 칸에 한 글자를 쓴다고 생각하고, 자음과 모음이 칸 안에서 균형을 이루도록 배치하는 연습을 해보세요. 글자의 높이를 일정하게 맞추고, 모든 글자가 보이지 않는 바닥 선(baseline)에 맞춰 정렬되는 것만 신경 써도 글씨의 가독성과 심미성이 놀랍도록 향상됩니다.

     

     

    3. 필사를 넘어 '나만의 글씨체' 만들기: 꾸준함이 만드는 기적

    기본기를 탄탄히 다졌다면, 이제는 연습을 지속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나갈 시간입니다. 이 단계에서 가장 좋은 친구는 바로 '필사(transcription)'입니다. 필사는 '무엇을 쓸까'하는 고민 없이 오롯이 '어떻게 쓸까'에만 집중하게 만들어, 글씨 연습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동시에, 좋은 문장을 곱씹으며 마음의 양식까지 쌓을 수 있는 훌륭한 취미 활동이기도 합니다.

    필사를 시작할 때, 처음부터 너무 거창한 목표를 세울 필요는 없습니다. 매일 시 한 편, 좋아하는 노래 가사 한 소절, 책의 감명 깊었던 한 문단 정도면 충분합니다. 중요한 것은 '매일, 조금씩, 꾸준히'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것입니다. 필사를 할 때는 단순히 기계처럼 베껴 쓰는 것을 넘어, 앞에서 연습했던 기본 원칙들을 의식하며 써야 합니다. 'ㅇ'을 쓸 때는 동그라미 연습을 떠올리고, '합니다'를 쓸 때는 'ㅎ, ㅏ, ㅂ, ㄴ, ㅣ, ㄷ, ㅏ' 각 요소의 모양과 자간에 신경을 쓰는 것이죠. 이렇게 의식적인 노력이 쌓이면, 어느 순간 생각하지 않아도 손이 저절로 움직이는 '체화'의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다면, 이제는 다양한 글씨체를 모방하며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보는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인스타그램이나 핀터레스트에서 '손글씨', '필사' 등의 해시태그를 검색하거나, 서점에서 판매하는 손글씨 교본들을 참고해 보세요. 마음에 드는 글씨체를 발견했다면, 그 글씨체의 특징을 분석해 봅니다. 자음 'ㅅ'을 유난히 크게 쓰는지, 모음 'ㅏ'의 세로획을 길게 늘여 쓰는지, 전체적인 기울기는 어떤지 등을 관찰하고 따라 써보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의 글씨체를 모방하고 조합하는 과정 속에서, 기존의 내 글씨체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나만의 개성 있는 글씨체'가 탄생하게 됩니다. 정자체로 시작해 점차 흘림체를 시도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 모든 과정은 하룻밤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년필의 사각거림을 즐기며 꾸준히 노력을 쌓아간다면, 훗날 당신의 노트에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당신의 감성이 오롯이 담긴 아름다운 글씨가 가득 채워져 있을 것입니다.

    결론: 재능이 아니라 습관입니다.

    만년필로 예쁜 손글씨를 쓰는 것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올바른 원리를 이해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꾸준히 연습하는 '성실함'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입니다. 오늘 배운 방법들을 바탕으로, 지금 당장 당신의 만년필을 들고 가장 좋아하는 문장을 노트에 적어보세요. 어제의 글씨보다 조금 더 나아진 오늘의 글씨를 발견하는 작은 성공이, 내일의 당신을 '손글씨 장인'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